[연구사업 CoP]. 2. 창의공간 세미나 – 창발하는 창조성

 

1. 창발 Emergence

창발(Emergence)이라는 것은 질서와 카오스 둘 사이의 진동하는 경계에서부터 일어난다. 즉, 서로 열려있는, 운동성을 가진 구조로부터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문장을 말할 때, 낱개의 단어 하나에는 문장이 지시하는 의미 전부가 들어가 있지 않다. 문장 전체를 읽어야 의미를 온전히 알 수 있게 된다. 창발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이처럼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크다라는 것이다.

 

1) 창발의 원리: 자기조직화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박수를 치게 되면, 처음에는 서로 엇갈리던 박수 소리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동기화가 일어나게 되고 일정한 리듬을 갖게 된다. 그러면 패턴이 만들어진다. 이 지점이 바로 창발이다. 박수가 사라지면, 패턴 역시 사라진다. 과거 재래시장이 만들어지던 원리도 이와 같다. 상인들이 계속해서 자리를 잡으면서 시장을 이루는 맥락이 만들어지고, 그 맥락이 시스템화 되어 강화-결속되어갔던 것이다. 건축에서는 이와 같은 원리를 자기조직화, Self-Organization라고 말한다.

 

2) 창발의 구조

창발의 첫 번째는 새로움을 인지하고, 요동이 일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을 네거티브 단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 다시 안정을 위한 포지티브 단계가 연속된다. 이 네거티브와 포지티브 사이 지점에서 어떤 분기점이 생겨난다. 순간적으로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면, 창발이 이뤄지는 것이다. 창발은 진화로 이어진다. 창발은 이처럼 연속성과 오픈시스템을 기반으로 한다. 과정들 사이 사이에서 시간 역시 중요한 팩터가 된다.

 

3) 건축과 도시는 자기조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제까지 건축에 있어 통제(Control)라는 개념을 제외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므로 더욱이 현대의 건축에 있어, 자기조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자기조직화에서 통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물음은 절대적이다. 현재의 연구들은, 앞으로의 건축에서는 통제보다 오퍼레이션(Operation)의 부분이 강화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오퍼레이션, 운용이라는 말은 단순한 관리(Management)를 넘어 이 건물이 “건축” 이후 어떻게 거동되고 작동되는가 하는 차원의 일을 의미한다.

[그림 1] 창의공간 세미나 교육현장 모습

 

2. 복잡성 이론 Complex Theory

모더니즘 이후 건축가들은 건축, 그보다는 세계의 복잡성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램 쿨하스(Rem Koolhass)는 ‘복잡성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가’를 탐구했고, 하브라켄(N. John Habraken)은 건축과 환경은 기본적으로 에이전트의 게임이며, 건축은 건축가의 개입 보다 오픈 시스템과 상호관계로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외 그룹 Team X와 루시엔 크롤(Lucien Kroll) 역시 복잡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1) 오버래핑 Overlapping

크리스토퍼 알렉산더(Christopher Alexander)에게 근대 도시는 차가 없으면 불가능한, 건조하고 재미없는 도시로 보였다. 그는 ‘도시가 어쩌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대도시를 떠나 교외의 작은 마을로 가게 되었다. 그의 ‘패턴랭귀지(Pattern Language)’ 개념은 이 물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가 관찰한 마을의 사람들은 관계의 다리를 3번만 건너면 모두가 친인척 관계에 있었는데, 이 관계를 도식화를 시켜보면 서로 수없이 겹쳐지는 다이어그램 형상이 나왔다. 이것을 크리스토퍼는 오버래핑이라 지칭했고, 이는 대도시의 트리 구조와는 완벽히 대조적인 것이었다. 그는 진정한 도시의 창조성은 이렇게 끊임없이 서로 영속되는 관계의 그물망에서 도출된다고 했다. 그에 반해 근대의 도시는 지나치게 말끔하고 인위적인 것으로, 건축가의 ‘액션’이 지나치게 개입되었다고 주장했다.

 

2) 창조성이란 어디서 오는가

아르키메데스는 그의 난제를 연구실이 아닌 욕탕에서 해결했다. 종종 어떤 문제의 답은 동일 매트릭스가 아닌 전혀 다른 매트릭스에서 도출되기도 한다. 이것은 창조성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며,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오버래핑과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새로 알게 되고 관계를 맺기 시작할 때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서로 불편해지는 시점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인지 영역에 ‘타인’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후 불편함은 타인에 대한 나의 인지와 맞물려 상호간의 정보가 교환되는 단계로 나아간다. 상호작용과 공진화 같은 과정이 이뤄지고, 최종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게 된다. 최근 facebook, GOOGLE, yahoo! 등의 기업들은 이러한 창조적 상황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공간적인 오버래핑을 통해서 조직원들의 창조성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이다. 조직원들이 어떤 상황, 환경 속에 있을 때 자신의 창조성을 최고로 끄집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결과적으로 그들 기업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림 2] 창의공간 세미나 교육현장 모습

 

3. 능동적 사용자 Active User

건축은 건축가 없는 건축이 되어가고 있다. 중요해지는 것은 사용자, 능동적인 사용자다.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작품과 나 자신의 상호작용으로서 감상을 하는데 이 감상방식에는 저마다 차이가 있는 것처럼, 건축 역시 마찬가지다. 공간과 사용자의 관계는 개인마다 전부 다르고, 사용자는 각자의 요구와 환경에 따라 창의적 이용권리를 가진다. 건축은 이제 자기조직화를 통해서 창발된 구조, 그 구조와 사용자간의 관계를 통해서 완성된다. 그럼에 건축가는 이제 어느 정도까지 “헐겁게” 건축을 해야하는가, 묻게 된다. 건축은 스트럭쳐, 컨트롤, 오퍼레이션뿐만이 아니라 훨씬 더 다층위의 포괄적인 것들을 말하게 되었다. 때로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Invisible에 대한 개념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도심의 엑스스포츠 X-Sports의 공간 역시 건축이 될 수 있다. 스케이터가 스케이팅을 하는 순간 그 자리, 그 공간은 건축이 된다. 스케이팅 장이 스케이팅이 시작되는 순간 거리의 표면에 생기고, 스케이팅이 끝남과 함께 순간 사라진다. 거리가 원래 건축가가 설계했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현대의 도시와 건축에서는 이런 사례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똑같은 건축도 능동적인 사용자 100명에게는 100가지의 건축이 된다. 카우스모스의 시대에 건축의 절대적 기능이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제레미 벤담의 판옵티콘Panopticon은 중앙도출식 시스템으로 공간 내부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현대의 건축, 자기조직화와 창발, 능동적 사용자의 개념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자기조직화로 이뤄진 건축은 스스로 생겨나고 자율적 상호작용을 통해 유지-발전된다. 인위적인 통제가 없는 상호관계는 때로 어긋나기도 하면서 다시 맞춰지기도 하면서, 건축 안에 살아 숨쉬는 시너지를 불어넣는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건축은 끝을 알 수 없는, 끝을 열어두어야 하는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