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ARCOM 유럽 출장기
– 신소영, ARCOM 연구원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스웨덴.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유럽 북부의 이 땅은 유럽 전역에 움트고 있는 예술을 기업이나 다양한 조직에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가장 활발한 곳 중 하나다. 이것이 arcom이 이번 여정으로 스웨덴을 가장 우선시 꼽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Artistic Intervention in Organization(조직 내 예술적 개입)”이라 칭하고 범 유럽 캠페인으로 연계해나가고 있다. 일종의 창조적 충돌(Creative Clash)임 셈이다.
유럽 내 AIO의 움직임을 주도하는 틸트(Tillt)는 스웨덴 예탈란드 주 문화위원회가 위탁한 비영리 민간조직으로 1973년 설립되었다. 틸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예술이 창의성과 혁신, 인적 자원 개발을 돕는 주요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믿음 하에 예술가들을 기업이나 조직에 파견하여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내는 다양한 시도를 벌여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예술적 방법론이 생겨나고 있으며, 예술가들을 위한 직업 영역이 창출되고 있다.
틸트 사무실에서 창립자인 피아 아레블라드(Pia Areblad)를 만났다. 원래 주의 문화행사를 지원하던 틸트가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된 데에는 예술이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있어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그녀의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녀의 열정과 의지를 높이 산 예테보리 오페라하우스에서 틸트를 후원하면서, 예술을 통해 조직이나 사회를 변화시키는 신개념 프로젝트들이 시작되었다. 원래 피아의 직업이 무용가여서인지 초기에는 유독 무용가나 안무가가 참여한 프로젝트가 많았다고 한다. 사무실에서의 인터뷰를 마치고, 마침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Bräcke Diakoni는 고령자와 장애인을 위한 의료서비스 기업으로, 지난 1년간 틸트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9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이 요양원은 근래 병동별로 소통이 잘 되지 않고 그 결과 병원 전체가 삭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문제가 지적되어 왔다. 이에 시각예술가와 간호사, 관리팀이 함께 연구와 조사 기능을 담당하며, 병원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을 찾아내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지금 이 병원의 중앙 정원에는 팀별로 작업한 다채로운 식물이나 돌로 이루어진 커뮤니티 가든이 조성되었는데, 병원 내의 분위기나 사람들이 뿜어내는 온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한다.
스웨덴을 등지고 다음 여정은 독일 베를린이다. 바로 이 곳에 베를린 사회과학연구소(WZB)가 있는데, AIO 연구를 주도하는 핵심 인물 아리안 안탈(Ariane Berthoin Antal)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EGOS(European Group for Organizational Studies) 학회에 참석했다 막 귀국한 그녀는 70이 넘은 나이에도 예술적 개입이 얼마나 의미있는 작업인지를 알리는데 조금의 지체도 지침도 없다. 그녀는 유럽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AIO 프로젝트들의 방법론을 연구하고, 평가 방법을 개발하며, 조직을 어떻게 설득하여 참여시킬 것인가에 대한 대안들을 찾아낸다. 아리안 교수는 영국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의 운영 매니저로 활동하던 당시 문화예술에 노출되는 것이 얼마나 조직에 도움이 되는지를 몸소 체험한 후, 이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사진: Ariane Berthoin Antal 교수와의 인터뷰>
아리안 교수가 사회학, 조직경영학적 배경을 토대로 AIO를 지원한다면, 현재 영국 St. Martin 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쉬우마(Giovanni Schiuma) 교수는 경영학적 관점에서 예술의 기능을 역설한다. 영국 런던에서 만난 쉬우마 교수는 영국이야말로 이미 너무나 오랜 세월 예술이 기업이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해온 대표적인 나라라고 설명했다. 그는 6년전 우리의 메세나협의회에 해당하는 영국 A&B와 함께 4년간 작업을 하며 “The Value of Arts for Business”라는 연구 성과를 거뒀고 이는 예술적 개입 활동의 이론적 근간이 되어 왔다. 현재 세인트 마틴 대학의 “Innovation Insights Hub”에서 예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가 통섭을 통해 혁신을 이끌어내는 작업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예기치 않게 영국의 Royal College of Art의 Innovation Design Engineering 교수진인 Bronac Ferran과의 만남을 현지에서 주선 받았는데, 이 대학에서는 영국 정부가 지원하는 “Creative Exchange(일반기업과 인문/사회학자,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팀을 만들어 조직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프로젝트)”에 참여해오고 있다. 한국 예술대학들과의 협업이 향후 전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해왔다.
<사진: Giovanni Schiuma 교수와의 인터뷰>
두 대가들을 뒤로 하고 스페인에서 AIO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콘넥시오네즈 앵프로바블(Conexiones Improbables)을 찾았다. 코넥시오네즈는 2010년, 빌바오 시 의회의 지원으로 시작된 예술을 통한 사회와 조직의 변혁을 위한 민간 기업이다. 매년 9개월 동안의 장기 프로젝트와 ‘Creative Capsules’이라 불리는 단기 프로젝트를 함께 운영하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 마침 올해 진행된 단기 프로젝트에 대한 성과 발표회가 열렸다. 이번 발표회는 공공, 의료분야에서 진행된 10가지 사례가 공개되었는데, 항상 누워있어야만 하는 환자들을 고려하여 병원 천장 공간을 바꾸고, 요양원의 노인들의 이야기를 매개로 한 예술 작업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병동 아이들의 편지를 예술가가 배달해주며, 정신 병원의 비전과 미션을 연극으로 만들어 재인식시키는 활동 등 각각의 사례에 고민과 그 고민을 함께 해결해나가려는 노력의 결실이 엿보이는 듯 하여 기분이 좋았다.
<사진: Conexiones Improbables의 성과 발표회>
짧지만 긴 여정을 마치고, 이젠 다시 우리의 고민과 조우할 시간이다. 우리 땅에서 예술은 어떻게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를 어떻게 설득시켜나갈 것인가, 어떤 의미들을 만들어나갈 것인가…… 수 많은 고민을 안고 비행기에 오르자 마음이 다시 바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