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시대는 끝났다” …변화하는 기업 학습 패러다임
“기업에서 학습을 지원해주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통찰력(Insight)을 얻게 한다. 둘째, 관점(Perspective)을 갖게 한다. 여기서 사람들에게 통찰의 시간을 주는 데 가장 좋은 소스 중 하나가 문화예술입니다. 전수환 교수님(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께 요청을 드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죠. 교수님께서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집단들의 특징, 예술의 진화 과정에서의 시너지나 변화에 대한 조류 등에 대해 직원들에게 강의를 해주시면, 저희 직원들이 반추해보고 무언가를 깨우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예술 분야에서는 이런 패러다임 시프트가 늘 일어왔고, 지금도 일고 있고, 거기에 대한 시도가 또 많이 존재하잖아요?”
올해 아르꼼의 <문화예술을 통한 창조경영지원사업> 대상 기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SK플래닛 인재육성팀 황상탁 과장님과의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전수환 교수님과 함께 진행했던 조직 관리 프로젝트 사례들부터, 기업 학습 분야의 이슈와 학습 시스템 발전 경향, 그리고 아르꼼과의 연계를 통해 기대하는 바까지 나눠볼 수 있었던 유익한 자리였습니다.
CoP, 지속가능한 문제해결 프로세스
직원 학습 분야로 직무를 전환한 뒤 황상탁 과장이 가장 먼저 맡은 일은 공정 엔지니어를 위한 문제해결 프로세스를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개발한 교육과정을 실제 공정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고려되지 않았던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제조업에서는 옆 공정에서 이미 몇 번이나 일어났었던 실수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요. 자기 조직과 그 밖의 조직 사이에 소통이 전혀 없거든요. 그걸 파악하고 나서 어떻게 하면 그런 반복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죠. 그때 도움을 주신 분이 전수환 교수님이셨어요. CoP(Community of Practice) 프로젝트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주셨습니다.”
CoP 프로젝트는 서로 다른 공정의 동일한 직무 담당자들을 엮어 그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신뢰와 친분을 쌓게 해, 자연스럽게 노하우의 공유가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당시 기업사회에서는 ‘비생산적인 일’로 비칠 수 있는 시도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이와 같이 인포멀한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이론적으로, 또 실무적으로 분명히 효과가 있으며, 이윤 창출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에서는 내부의 반발도 심했습니다. ‘무익한 일이다’ ‘재원 낭비다’ ‘업무에 도리어 방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진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고 황상탁 과장은 말합니다.
“기업사회에서는 시간이 돈이에요. 기업 입장에서는 이미 일어난 적 있는 문제가 A 공정에서 발생할 때마다 이 문제에 대해 알지도 모르는 B, C, D, E 공정의 실무자들을 일일이 찾고, 그들을 문제가 발생한 공정에 보내 문제를 해결하게 한 뒤에 다시 원래 일로 돌아가게 하기까지 드는 비용, 거기다 그 사이 일하지 못하고 흘러간 시간을 환산한 비용보다, 이렇게 인포멀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운영하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적은 거죠.”
실제로 이렇게 실행된 CoP에서 LG 디스플레이는 상당한 성과를 얻었습니다.
즐거운 직장 만들기는 계속된다
들어가기 앞서, ‘즐거운 직장 만들기’는 왜 필요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직장이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LG 디스플레이는 LCD 부문에서 세계 1위라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직원들은 그에 대한 성취감이나 행복감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점을 내부로부터 지적받았습니다.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애착이나 자부심이 성과를 따라가지 못하는 셈이었습니다. 직원들의 인식을 쇄신해야 한다는 것은 일목요연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에 대해 적절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전과는 다른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50년대 생산성 시대에는 ‘열심히 해라’, 그 다음 효율성 시대에는 ‘잘 해라’, 그러다 스티브 잡스가 뜨고 나서는 ‘창의적으로 해라’가 됐죠. 하지만 실제로 창의적으로 일하기 위한 환경은 마련이 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창의적인 환경이라는 건 뭘까요?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건 또 뭘까요? 직원이 업무를 진행하면서 성취감과 자부심, 그리고 행복감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에요. 그걸 위해 ‘즐거운 직장 만들기’가 필요했어요.”
누군가는 이 문제를 조직문화의 차원에서 받아들였습니다. 기존의 조직문화가 가진 한계점이 드러났으니, 이를 보완하여 시대에 맞는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황상탁 과장 역시 그 중 하나였습니다. 2008년 그렇게 만들어진 즐거운 직장 만들기 팀은 조직문화 선도라는 관점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프로그램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스마트 워킹과 재택근무, 여성인력의 고용 비율 증진 같은 직원 복지 개선부터, 리더들이 가지고 있는 리더십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교육까지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을 진행했었어요. 가족 친화적인 기업으로 이미지를 바꿔나가는 데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회사 로비에서 여러 장르의 문화행사를 진행하면서, 그런 것들이 직원들로 하여금 자신이 이 회사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제공받는 가치 중 하나라고 생각하게끔 만들려고 했죠.”
조직문화는 사실 굉장히 두루뭉술한 내용입니다. 이렇게 측정도 평가도 어려운 이미지들을 이론화하고, 그에 맞는 프로세스를 만들어 체계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일은, 당시 한국 기업사회에서는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선도 과정 속에서 여러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냈던 즐거운 직장 만들기 프로젝트는, 변화하는 시대 조류에 기민하게 대응해가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포멀 러닝, 변화하는 기업 학습 패러다임
황상탁 과장이 LG 디스플레이에서 추진했던 CoP 프로젝트와 즐거운 직장 만들기, 그리고 현재 SK 플래닛에서 진행중인 인재육성 프로젝트는 모두 하나의 공통된 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포멀 러닝입니다.
“이제 교육은 없습니다. 교육이라는 말을 안 씁니다. 지금은 본인이 원하는 걸 본인이 학습을 해야 하는 시대예요. 기업 현장은 이미 변화가 너무 빨라서 선행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 교육을 하는 게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기존에 하던 일괄적이고 일방적인 집합교육이나 이벤트성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만연해 있고요. 그래서 지금은 직원 자신이 배울 것을 정해 자발적으로 배우는 비정형적인 학습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인포멀 러닝의 대표적인 예시는 멘토링입니다. 멘토링의 핵심은 학습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대한 이해를 촉진시킬 매개를 만들어주는 것인데요. 이런 요소는 최근 기업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학습법의 바탕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현재 SK 플래닛에서 운영하고 있는 인포멀 러닝 네트워크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과외하기’라는 이름을 가진 이 시스템을 통해, 직원들은 자신이 정말 필요로 하는 지식을 기업 내의 전문가를 통해 손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간편한 점화(Ignite) 과정은 직원들로 하여금 업무에 대한 자연스러운 몰입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줍니다. ‘창의적으로 해라’의 밑바탕이 되는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실제 현장에 마련되기 시작한 것이죠.
“만약 제가 정말 관심 있는 주제가 있다면 소설을 읽어도, 역사책을 읽어도, 음악을 들어도 거기에서 뽑아낼 수 있는 게 분명히 있거든요. 창의성은 주로 이런 통찰의 시간을 거치며 발현이 됩니다. 그리고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IT 업계에서는 이 창의성이라는 부분이 점점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어요. 그래서 창의성을 발동시키는 기제 또한 중요해졌죠. 언뜻 업무와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지식도, 몰입과 통찰이라는 정신적 화학작용을 통해 창의적인 서비스 제품 개발로 연결되곤 하거든요.”
Epilogue
CoP 프로젝트를 통해 전문가들을 연결시켜 조직 내 소통을 활성화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즐거운 직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통해 조직문화의 조성으로 발화되는 동기부여의 중요성을 알게 된 황상탁 과장은, 그 두 가지 깨달음을 접목시키는 과정 속에서 다가올 기업 학습의 패러다임을 내다볼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열심히 해라’ ‘잘 해라’ ‘창의적으로 해라’ …… 전 이 다음이 ‘예술적으로 해라’라고 생각해요. IT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사람들에게도 예술가적인 감성을 요구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거예요.“
그 시대로 이어지는 길목의 초입에서, 황 과장은 SK 플래닛의 직원들에게 예술적 개입을 통한 깨달음의 순간이 주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통찰의 시간을 갖게 함으로써 직원들이 보다 새로운 형식으로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그의 직무이자 목표입니다.
그리고 아르꼼은 2013년 <문화예술을 통한 창조경영지원사업>을 통해 그 목표가 이루어지도록 힘을 보탤 예정입니다. 예술경영 이론과 기업 실무가 융합되며 새로운 방식의 동력원을 만들어가는 과정, 함께 지켜봐주시겠어요?